관찰/학교 방역도우미 일기

2022-07-20 학교 방역도우미 일기

몸을쓰라곰 2022. 8. 5. 18:01

720일 학교 방역도우미 일기

 

어제에 이어서 아이들의 발걸음을 관찰했다. 분명히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막상 적으려니 느낌만 남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 남자아이의 뜀박질 여자아이 둘이 평소랑 같은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뒤에서 열심히 뛰어오는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꽤 뒤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길래 무엇이 저리 급하나 싶었는데, 여자아이들이랑 같이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셋이 대화하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 뒤돌아서서 인사하는 여자아이 학교에는 입구가 여러 곳이 있지만, 발열체크를 하려면 내가 서 있는 장소를 거쳐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우선 내가 서 있는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아이가 없으면 다른 통로에서 오는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한다. 그러면 놀라는 아이가 있다. 오늘 만난 아이는 가다가 90도를 돌아서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당황하면서도 인사를 받았으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고마웠다.

 

*걸음걸이는 아니지만 자기 무언가를 벽에다 던지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 이전에도 틔는 행동을 많이 하던 아이였는데, 그렇다고 무언가를 던지고 갈 줄은 몰랐다. 나는 많이 놀랐다. 분명히 주우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가버리면 나는 상처를 받아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보내버렸다.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있다. ‘저 아이는 바뀌지 않을거야. 내 말을 듣지 않을거야. 어차피 안 들을건데 그런 말 해서 뭐해? 괜히 한 소리 듣기 전에 넘어가자.’ 그런데 생각해보면 웃겼다. 나보다 20살이나 어린 아이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안듣고는 아이의 몫이었다.

 

이외에도 오늘은 나름 특별했다. 전교회장 선거날이었기 때문이다. 등교지원을 돕고 학부모상주실에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귀울여보니 출마한 아이들의 공약이야기였다.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오른쪽 방송실에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열심히 멘트를 연습하는 아이가 보였다. 긴장되었는지 다리를 계속 움직이며 가만있지 못했다. 전교생 앞에서 이야기하는 만큼 많이 떨릴 것이다.

 

소리가 나는 곳은 학부모상주실 왼편의 작은 교실이었다. 원래는 장애아동들이 쓰는 공간이었는데, 오늘은 자기차례가 이미 지났거나,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후보자들이 함께 모여서 선거방송을 보는 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창틈 사이로 보이는 모니터에서 방송에 나온 후보자를 볼 수 있었다. 포스터만 보았을 때와는 또 달랐다. 요리조리 조리있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포스터에서 별 공약이 없어서 아쉽다고 느낀 아이도 방송에서는 어찌나 단호하고 또박또박 말을 잘하던지. ‘지킬 수 없는 공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선이 되면 앞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던 한 아이의 모습은 그렇게 당찰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긴장한 탓인지 영 맥을 못추는 아이도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항상 마주치던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은 회장 기호 3번의 키 큰 아이였는데 학부모상주실에서 들어오던 때에 본거라 제대로 공약을 듣지 못했다. 이 아이는 1)의 여자아이 중 한명이기도 하다. 어쩐지 오늘 셔츠를 입고 왔더라니. 두 번 째 아이는 5학년 전교부회장 선거 1번으로 나온 아이였다. 어제 썼었던 발랄하게 뛰어가던 아이의 언니! 묵묵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는데, 선거에 나올만하다고 느꼈다. 열심히 자기 공약을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맨날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나눴던 대화 이외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고학년은 고학년이었다. 저학년들의 귀여움에 치이던 나였지만, 고학년들의 똑똑함에는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