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대안학교 1년살이

3.7 ~ 3.14 대안학교 교사일기

몸을쓰라곰 2025. 3. 19. 21:29

3.7 금 - 좀 더 세게 말해도 돼

1학기 학급활동을 아이들과 함께 정했다. 여러 활동 중에서도 아이들은 캠핑을 원했다. 학교를 벗어나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붙어있으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친해지기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캠핑이 반갑지 않다. 나는 혼자 지내며 에너지를 충전하는게 필요한 사람인데,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의 단합을 위해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인데, 어느새 아이들 사이에서는 캠핑이 당연한 문화가 되어버렸다. 애들은 1학기에 한 번 캠핑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일년에 한번 가자고 했다가, 애들이 저항에 부딪혔다. 애들은 그럼 한 학기 해보고 또 할지 말지 결정하자고 했다. 내 방법을 그대로 써먹다니.. ㅋㅋㅋ 나는 여지도 남기기가 싫었다. 그치만 이 정도가 타협의 선인가 하고 그러자고 했다. 잘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애들의 반응에 따라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게 되었다. 다음에는 세게 말해야지.

 

3.10 월 - 미리미리 하라니깐

신입생 맞이를 했다. 신입생은 바로 통합반으로 들어오지 않고, 신입생끼리 모여 2주간 있다가 통합반에 배정된다.  며칠전부터 하루단위로 그렇게 준비해라 준비해라 준비해라 하지만 닥쳐야 준비하는 아이들이다. 당일 아침에 전달사항을 말할 때가 되서야 지금 준비하면 안되냐고 그런다.. ㅋㅋㅋ 그래도 어찌저찌 잘 준비했다. 준비한 걸로 신입생 잘 맞이해서 다행이다.

 

3.11 화 - 너무 걱정하지마

학년시간 수업을 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무리가 잘 되어 뿌듯하다. 수업 중간중간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쌤들에게 감사하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 어떻게 좋게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그리고 수업준비에 쓰는 시간이 많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해보자.

 

3.12 수 - 진행 과정 명확히 알려주기

교사회의 시간에 연구부 안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학교와 통합 연수를 이번에 내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시간에 마음을 내어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실 선생님을 모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행하다가 아직 논의과정이어서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모집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말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어 어떻게 대할 것인지 토론했는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에게 힘든 상황이 펼쳐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냥 불안해하기보다는 내가 그 친구를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3.13 목

어제부터 학급독서시간을 맞이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읽기와 쓰기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시간을 들여서 ppt를 준비했는데, 오늘 아이들에게 장소를 이동해서 ppt설명이 있을거라고 하니 벌써 귀찮아하며 입이 삐쭉 나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설명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이걸 왜 해야 해요? 라고 따지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로 따지는 아이들을 생각해봐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해보니, 그 친구들은 원래 하기싫다는 태도로 나오는 친구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친구와 친한 선배들이 그런 성향이 있었고, 그 선배들이 부정적인 태도로 나오면 선생님이 위축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렇지만 거기에 끌려가기보다는, 내 스타일과 논리로 기죽지말고 밀고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셨다. 그 아이들이 가진 논리가 세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항해도 나중에 가면 갈수록 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이들은 원래 가만히 있으면 놀고 싶고, 부러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뭔가를 하려고하면 저항적인 태도로 나오는게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하다. 특히 학년과 수준이 천차만별인 반에서 모두가 나의 말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좋은 반응을 기대하지말자. 그 반응에 위축되지 말고, 특히 저항하는 친구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나만의 논리를 가져가자. 그리고 밀고나가보자. 너네 배우려고 온 거 아니냐. 서평작성도 힘들어하고 모르는 단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울 수도 있을텐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너네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한 번 잘 해보자고.  

또 다짐하자. 애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일하지 말고, 애들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나로서 일하자고.

 

3.14 금

독서시간의 중요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밤에 대충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고, 오늘 아이들에게 독서시간의 필요성에 다시 설명했다. 주요 골자는 이것이다.

'독서시간과 서평이 학급시간에 들어가고, 학점을 받는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검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당장 대학에 가면 모든 과제가 전부 글쓰기다. 직장을 구하려고 해도 자소서를 써야 한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해도. 선생님들마다 각자 반에 줄 수 있는 도움이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이다. 나는 어디가서 글쓰기 때문에 고생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잘 알려주고 싶다. 이전까지 아이들을 보면 읽고 쓰는 것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서평도 못써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일이 반복되게 하고 싶지 않다. 여러분들을 위해 내가 도와주고자 제안하는 것이기에, 지금은 이해가지 않아도 믿고 한 번 해보았으면 한다.'

ppt가 아니라 눈높이에 맞춰 솔직하게 말하니까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래, 역시 말하기를 잘했어! 

다음으로는 내 사회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이 수업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나름 빡세게 준비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연기자가 된 것처럼 날아다녔다. 주된 골자는 다음과 같다.

'우리 학교는 중1,2 때는 학교에서 적응하고, 친구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중3,고1 때는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고 사회참여를 하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러분이 어려워 하는 논문과 학년시간, 움직이는 학교도 다 그를 위한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그런 환경에 놓이다보니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내 수업이 그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의 여러 이슈를 알아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다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집중해서 들어주었고, 내 수업을 가치있게 여기는게 느껴져서 뿌듯했다.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