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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대안학교 교사일기 - 나를 믿고, 아이들을 믿고 나아가보자관찰/대안학교 1년살이 2025. 2. 26. 00:20
1.작은 성취
개학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학기계획서를 쓸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은 계획을 위한 계획쓰기로 끝날 때가 많다는 거다. 동기부여도 안되니 대충 시간때우기용으로 한두줄 쓰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자기평가를 할 때도 잘 지키지 않아 후회하는 일들이 반복되곤 한다. 그래서 어떻게 동기부여를 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쓰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ppt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몇몇 대충 쓰는 애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열심히 쓰는게 느껴져서 뿌듯했다. 실제로 다 쓴 계획서를 읽어보았을 때도 계획과 실천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 좋았다. 나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닿은 작은 성취!
2.고학년의 충고
어제 반이름의 해프닝이 있고난 후 나를 지지해주었던 친구와 면담을 했는데, 그 친구는 현망진창을 강력 주장한 아이들이 반이름을 진짜 바꾸고 싶기보다는 그냥 교사에게 맞서고 싶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쎄게 얘기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참 고마운 친구다. 나는 무작정 따지고 드는 아이들을 대할 때면 순간 어는 경향이 있는데, 다음부터는 나를 믿어주는 아이들을 믿고 좀 더 강력하게 말해봐야지!
-tip 다른 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고 쎄게 표현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ex) 나는 기분 나빠! 그럼 너 이름 달아서 은망진창으로 해도 좋겠어? 와 같이.. ㅋㅋㅋ
3.한 친구의 상담
한 친구가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주된 내용은 자신은 연기자가 되어 유명해지고 싶은데, 어머니가 연기자가 되면 가난해질 수도 있으니 대학에 가서 플랜b도 준비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학교의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는 이제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에, 대안학교에 더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살에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자꾸 조급해진다고도 말해줬다. 그 친구는 두서없이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표현했지만, 나는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아.. 우리는 가치관 정립이 시작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사회의 요구와 환상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자와 인기라는 미디어가 심은 환상, 대학이라는 부모님이 심어준 안정성, 돈 자체가 멋진 인생의 표본이 되는 사회 분위기.. 우리 아이들은 이런 요구 속에서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씁쓸해졌다. 그 친구에게는 지금 너가 생각하는 성공이 조금 추상적인 것 같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되면 다시 찾아와달라고 말했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친구와 불안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학년시간
4학년(고1)을 맡은 선생님 3명이 모여 주제학습을 고민하는 첫모임을 가졌다. 민주주의와 관련한 수업계획을 어떻게 짤 것인가가 그 주제였다. 나는 미리 생각한 주제가 있었다. 바로 '선거' 였다. 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민주주의 이론과 가치를 배우고 관련 경험을 쌓는 식의 컨셉을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시의적절한 주제이고, 나아가 학생회장 선관위를 맡은 4학년들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는 주제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걸리는 점은 내가 개설하려는 개인 수업도 선거파트가 있기에 개인 수업과 겹치는 부분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단점이 있다.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4학년들이 이 주제를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고, 결과적으로 최종 주제로 채택되었다. 뿌-듯! 다음은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쌤들과 함께 짜보았는데, 놀라웠던 점은 쌤들의 커리큘럼 구체화 속도였다. 탁-탁-탁 했더니 구체적인 커리큘럼과 역할배분까지 완료되었다고?! 나는 무엇을 할 때 고민하고 곱씹는 경향이 있는데, 진행이 빠른 쌤들과 함께하니 이렇게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동시에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들의 빠른 의사결정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일단 수업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부차적인 요소에 대한 걱정은 배제하는게 중요한 듯 하다)
오늘의 감사일기
1. 잘할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시도해보는 내 자신의 용기에 감사하다!
2. 공허하다는 나의 말을 듣고 함께 시간을 보내준 쌤에게 감사하다!
3. 다양한 업무도구를 알려준 쌤에게 감사하다!
4. 나를 믿고 자신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준 아이에게 감사하다!
5. 나에게 조언을 해준 아이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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