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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 대안학교 교사일기-내가 나를 인정해주자
    관찰/대안학교 1년살이 2025. 3. 5. 00:23

    1.열등감
    오늘은 고등학교 1학년 학년시간 OT가 있었다. 어제 썼던 글에서 우리학교는 신청하는 수업이외에도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학년시간이 바로 그렇다. 우리 학교는 학년마다 교육목표가 설정되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3주간의 학교밖 체험학습과 한 학기의 준비기간이 있다. 오늘은 준비기간의 첫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인을 맡은 선생님께서 OT를 진행해주셨는데, 와.. 이런게 아이들이 납득하는 수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명확하게 캐치한다음에, 아이들이 평소에 고민하고 있는 부분과 교육목표를 절묘하게 일치시키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설명해주는 것도!
    그 순간에는 선생님의 설명과 아이들의 납득하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고 나니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열등감 때문이었다. 다음 강의를 맡은 나는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수업내용에만 매달려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서사를 만드는 능력에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 기준이었을 뿐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처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불안까지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런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 선생님은 교육학을 전공해서 몇년동안 관련 공부를 했고, 학교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시간을 쓰고 있는 선생님이지 않은가? 나도 그런 선생님의 좋은 부분과 나의 수업에 개선지점을 알아챘으면 사실 발전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데, 왜 나는 성장지점보다는 스스로 비판하고 자책하는 데에 매달리고 있을까? 당장 그 선생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기준을 그 선생님에게 두고 나를 평가하고 있는 걸까?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김주환 교수님의 마음강의를 듣는데(난 마음이 불안해지면 김주환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 분노나 두려움이 올라오는 이유는 어떤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씀이 마음에 박혔다. 나에게는 모두가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집착이 있다. 남들보다 더! 그 집착이 나로 하여금 자꾸 나보다 인정받는 사람이 보이고 그만큼 할 수 없음을 알때, 나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넌 인정받으려면 한참 멀었어. 더 잘해야 하는데 너는 아직 멀었어.'와 같은 말들. 어렸을 때 내가 질리도록 들은 말들인데, 왜 나는 훌쩍 커서도 이 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기를 쓰는 방향성도 되돌아보게 된다. 자꾸 나의 유능성을 강조하면서 '무언가를 잘하는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물론 그정도는 아닐테지. 그런데 나의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아마 나는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면 유능해야 해, 더 잘해야 해.'라는 고정관념도 있나보다. 결국 '누구보다 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러기 위해서 유능해야 하며 더 잘해야 한다'는 인정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이다. 이 집착이 계속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마음이 우울했던 것도, 속이 불편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2.의존
    위의 감정을 느끼고 나니 내 수업안을 그 선생님에게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만든 수업안에 자신이 없으니, 자꾸 다른 선생님에게 의존하려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내 엄마가 아니라, 내 동료교사인데 말이다. 여기까지 적고보니까 잠깐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인정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내가 나를 많이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인정에 대한 집착은 나에 대한 비판과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지고, 타인에 대한 과의존으로 이어진다. 그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동료교사로서이다.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다해서 수업을 만들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노력을 인정해주자.  처음해보는 유형의 수업안인데,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으면 모조리 뜯어고칠 생각일랑말고 조금씩 조금씩 시도해보면 된다. 하루종일 거기에 매달릴 수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당당해지자. 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나눠주기 위해 마음을 냈고 도전을 했다. 그 마음과 노력을 인정해주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말고를 생각하기 전에, 그런 마음을 낸 나를 내가 먼저 인정해주자. 그리고 개선지점을 알게 되었다면 내가 실현가능한 목표를 두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 그리고 그 노력을 또 인정해주자. 다른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과 환상이 나를 자꾸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의 인정은 잠시 한편으로 밀어두고, 내가 나를 인정해주자. 내가 나를 사랑해주자.

    감사일기
    1. 나의 인정중독을 확인하게 해준 학교에 감사하다. 학교라는 현장이 없었다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겠지.
    2. 내가 나아질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나아갈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3. 마음이 복잡했을텐데 그래도 결국 일기를 쓴 나자신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4. 이 일기에 감사하다. 일기를 쓰며 불안한 마음 속 성찰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5. 이 일기를 쓰고나서 스스로 한 노력을 인정해주며 수고했다고 토닥여주었다. 내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줄 수 있어서, 사랑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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