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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안교육 교사양성 입문과정 7강 후기
    관찰/삶을 위한 교사대학 2022. 8. 4. 17:26

    7강 : 국내외 대안학교가 지나온 길, 나아갈 길 – 대안교육운동, 자유의 역사와 현재

     

    이번에는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선생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병곤 선생님에 대해 아는 바는 이전에 접했던 인터뷰 기사가 전부였는데요, 직접 뵈니 인자하고 푸근하신 인상 너머로 차분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강의 주제는 ‘대안교육의 역사와 한국 대안교육의 지형’이었습니다. 음...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이론에 이론에 이론을 더할 것 같은?! 어려운 강의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이런 제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신 듯 선생님은 이런 말씀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안교육이 과연 대안교육의 전부일까요? 흔히 대안교육을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대안교육의 역사를 따라가보면서 대안교육의 의미를 더 넓고 새롭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그냥 인상깊은 말씀이다..’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후기를 쓰며 나름대로 의미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단순히 학생이 아는 대안교육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대안교육이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고민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궁금해집니다. 대안교육은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든 것일까요? 이걸 알기 위해서는 대안교육 이전의 교육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중세시대로 가봅시다. 중세의 교육은 라틴어로 시작해서 라틴어로 끝납니다. 라틴어 문법을 배우고, 라틴어 구술 평가를 치르는 일이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 당시에 교육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이었죠.

    시간이 흐르고 산업시대에 이르러 대중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장주들이 아이들의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죠. 잉? 공장주들이? 왜 아이들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을까요? 공장주들에게 아이들은 굉장히 값싼 노동력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기초지식이 늘어날수록 공장을 더 빨리 돌리고 이윤을 늘릴 수 있는거죠. 교육의 초점은 노동에 필요한 지식을 단기간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주입시킬 수 있는지에 맞춰졌습니다. 공장주들이 교육에 따진 가성비를 살펴보면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정도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랜카스터 학교’가 있는데요, 이 학교는 ‘어시스턴트 시스템’이라는 조교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교사 1명이 학생들을 ‘숙련된 조교’로 길러내면, 숙련된 조교들이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식이죠(제가 2년동안 머물렀던 어디?!와 비슷한 느낌이 나네요^^). 이런 방식으로 1명의 교사만으로 200명의 노동자를 양성할 수 있는거죠.

    어쨌든 아이들이 무어라도 배울 수 있게 되어 다행아니냐고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노동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을 배운 아이들은 바로 공장으로 넘어갑니다. 공장에서 아이들은 무리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몸이 망가지는데요, 망가진 아이들의 자리는 새롭게 교육받은 아이들로 대체됩니다. 아이들의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말이에요.

    교육은 귀족의 특권을 유지하는 교육과 자본가의 배를 불려주는 교육으로 양분되었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공장이 있는 대도시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안교육운동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의에서 나온 대안교육운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꼽자면 호머 레인의 ‘리틀 커먼웰스’학교운동입니다. 이 학교는 여느 학교처럼 효율성이나 지식만을 주입하는 교육과는 달리 ‘노작, 사랑, 자유, 자치’를 학교의 비전으로 제시합니다. 또 여태까지 교육의 대상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을 교육의 주체로 세웁니다. 아이들은 직접 닭장을 운영하며 계란을 팔고, 판 돈으로 어떤 작물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논의합니다. 호머 레인은 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약 5년 동안 이루어지던 이 실험은 모종의 사건으로 멈출 수 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대안교육운동이 멈추지는 않았어요. 그 곳에서 근무했던 닐이라는 교사가 그 실험을 잇고자 학교를 설립했거든요! 이 학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서머힐’이라는 학교입니다. 조건이나 환경은 조금 다르겠지만, 처음 대안교육운동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대안교육운동이,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 믿으시겠나요? 저에게 있어 ‘우리나라의 대안교육’하면 떠오르는 학교가 바로 간디학교인데요, 간디학교가 만들어질 때도 서머힐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서머힐과 간디학교 사이에는 서로 공유되는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강의시간에 보았던 동영상에서는 선생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직접 언급하시는데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제가 인상깊었던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간단히 나눠보고자합니다.

    서머힐에는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어떤 일을 하던 학생의 자유라고 합니다. 자유하면 게으르거나 방종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저로서는 어떻게 자유가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여기에 대해 선생님께서 간디학교에서 일어난 예시를 하나 들어주셨습니다. 바로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도 핸드폰은 학교에서 여러 갈등을 일으켰어요. ‘몰폰’이라고 해서 수업시간에 몰래 핸드폰으로 문자나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이를 막고자 휴대폰을 걷어가는 선생님 사이에 갈등이 많았거든요. 핸대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수거전용 핸드폰?!을 따로 냈던 아이들도 생각나네요^^.

    간디학교 역시 핸드폰 사용문제가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타 학교처럼 아이들의 핸드폰 사용을 강제로 막는대신, 아이들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핸드폰 사용에 대한 규칙을 만들 수 있게 말이에요. 아이들 역시 ‘해방이다!’라고 외치며 학교에서 핸드폰 사용 전면허용을 원했다고 해요. 학교에서 핸드폰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그런데 잠깐,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규칙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처음에 아이들은 핸드폰 사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참여가 점점 줄어들었다고 해요. 핸드폰 사용 때문에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여러 활동과 관계를 놓치게 되는 것이죠. 아이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학교에서의 활동과 관계를 위해 핸드폰 사용을 조절하는 쪽으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외부에서 핸드폰 금지를 강요당하면, 아이들은 자유를 단순히 ‘핸드폰 사용을 마음껏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학교 역시 나의 자유를 침해하는 억압적 공간에서 그칠 뿐이구요. 하지만 간디학교의 아이들은 핸드폰 사용의 자유와 학교에서 배우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 사이의 관계를 인지하고, 본인들이 더 중요시하는 가치를 위해 규칙을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규칙이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되는 셈이지요! 처음에 선생님께서 하신 ‘자유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규율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 말씀이 이해가 잘 안갔는데, 이제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듯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성장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지구요!

     

    선생님께서는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이 ‘자유’를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기다려주지도 못한다고도 하셨구요. 자유와 자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학교에는 빡빡한 시간표와 경쟁이 남았습니다. 시간표는 아이들의 시간을 관리하고, 경쟁은 아이들이 배우는 동기가 되었어요.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신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로부터 아이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실천에 실천을 더해 지금의 대안교육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뭉클했습니다.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공간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구요. 제가 막막하게만 여겼던 대안교육이론들이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실천을 기록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까 고민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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